[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94] 3부 오름-(153)동수악
입력 : 2026. 10. 27(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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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풀이보다 기록과 현장의 대조 속에서 찾아야
물오름의 옛 기록과 현지 이름


[한라일보] 동수악은 5·16도로 숲터널 남쪽에 있다. 남원읍 한남리다. 해발고도 약 700m, 자체높이 약 100m인 오름이다. 산정부에는 둘레 약 220m의 분화구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물이 고여 있는 때가 많았으나,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린 뒤에나 물을 볼 수 있다.

지역에서는 이 오름을 '물오름'이라 부른다. 분화구에 물이 있으니 이름도 거기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명의 뜻을 밝히려면 현재의 경관뿐 아니라 옛 표기와 주변의 유사 지명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동수악, 지역에서는 물오름이라고 부른다. 남쪽 사려니오름에서 촬영. 김찬수
동수악과 관련된 옛 이름으로는 수악(水岳), 수봉(水峰), 수정악(水頂岳) 등이 제시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의 수악을 이 오름에 대응시키는 견해가 있으며,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수봉, 같은 해 '정의읍지'에는 수정악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1965년 간행된 '제주도'에는 '물있는오름'과 동수악(東水岳)이 제시된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도 이 일대 묘비에 동수악·수악·유수악(有水岳)이라는 표기가 있다고 소개한다. 이를 근거로 유수악을 '물이 신 오름', 곧 물이 있는 오름으로 풀이한 연구가 있다. 제주어 '신·이신'을 '있는'에 대응시키고, 유(有)를 그 뜻을 빌린 글자로 보는 것이다. 분화구에 물이 고인다는 점과 '물있는오름'이라는 기록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자 표기를 풀이하는 일과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한 이름을 확인하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유수악이라는 묘비 표기가 있다고 해서 주민들이 널리 '물신오름'이라 불렀다고 곧바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한남리 향토지 '내 고향 한남리'는 이 오름을 '물오름'이라 하고 수악을 함께 적었다. 분화구에 물이 있으며 주민들이 벌초하러 다니는 묘지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적어도 이 자료에서는 '물신오름'이라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다.



주변 물오름과 마루 계열 지명


이 향토지는 교래리와 수망리 경계에도 같은 이름의 물오름이 있다고 설명한다. 교래리 쪽 물오름은 성판악 탐방로 입구 동쪽, 동수악에서 북쪽으로 약 2.6㎞ 떨어진 오름으로 볼 수 있다. 정상부가 넓고 평평하며 항공무선표지시설이 자리한다. 이곳의 물오름을 제주어 '마르'와 관련지어 해석한다면, 물의 존재와 관계없이 지형어에서 이름이 생겨났을 가능성을 검토하게 된다. 즉, '마르오름'이 축약되면서 '물오름'으로 변했다.

동수악, 이 오름의 북쪽에 해당하는 5·16도로에서 촬영. 김찬수
수망리 경계의 물오름이 어느 오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동수악 동쪽 약 2.5㎞에 있는 머체오름을 후보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오름은 마은이오름 남서쪽에 해당한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의 오름지도와 1997년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다만 네이버 지도에는 남원읍 수망리 산203에 머체오름이 표기돼 있다. 서성로 인근의 머체왓숲길의 머체오름과는 다른 오름이다. 이 '머체' 역시 '마르'와 연결해 분석할 여지가 있다. 본 기획에서는 '머+체'의 구조로서 '머'는 마르, '체'는 '마루 지(旨)'에서 기원한 말로 '지'가 격음화 한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므로 머체오름은 '마르+마르'의 첩어형 지명이다. 즉, 등성마루가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동수악에서 남서쪽으로 약 4.3㎞ 떨어진 하례리에도 수악이 있다. 이곳 역시 지역에서는 물오름이라 부른다. 그러니 물오름이란 지명은 이 일대에만도 4개가 있는 셈이다. 무수악(無水岳)이라고 표기한 지도가 있다. 이를 '물어신오름', 곧 물이 없는 오름으로 해석한 학자가 있다. 동수악을 물이 있는 오름으로 보고 두 이름을 대비시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자 유(有)와 무(無)가 대비된다는 사실만으로 주민들의 명명 방식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무수악을 물과 무관한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검토할 수 있다. '마르' 계열의 지명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소리가 달라지고,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마르'가 '물'로 물이 '무(無)'나 '수(水)'가 사용됐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수는 물이라는 뜻을 직접 나타내기보다 우리말 소리를 그 훈을 빌려 적은 글자가 된다.



수정악, 물오름 지명 해독의 단서


이러한 논의에서 눈길을 끄는 표기가 수정악(水頂岳)이다. 정(頂)은 머리 꼭대기나 정수리를 뜻하며, 산에서는 정상이나 산마루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글자를 단순히 낯선 글자의 삽입으로 넘길 수는 없다. 산정(山頂)은 산의 정상, 가장 높은 곳만이 아니라 우리말 '산마루'로도 옮길 수 있다. 이는 정(頂)이 마루라는 지형 개념과 만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명학자 천소영은 '마르'형 지명어에 관한 연구에서 정(頂)은 두(頭)·상(上)·수(首)·봉(峰) 등과 함께 의미·어형 분류에서 '마루'에 해당함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사례가 곧 수정악의 표기 원리를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수정악의 정(頂)이 당시 음형의 일부를 반영했는지, 정상이라는 뜻을 보탰는지, 앞선 표기를 고쳐 적은 것인지 좀 더 따져 보아야 한다. 원문에서 글자의 형태와 문맥을 확인하는 작업도 선행돼야 한다. 다만 물오름이라는 지명과 이 오름의 지형으로 볼 때 '마르'형 지명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결국 동수악의 이름을 밝히는 핵심은 수(水)를 보자마자 물로 풀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그렇다고 물과 관련된 가능성을 미리 지울 필요도 없다. 분화구의 물, '물있는오름'이라는 기록, 수악·유수악·수정악이라는 표기, 주민들이 사용하는 물오름이라는 이름을 나란히 놓아야 한다. 여기에 주변 물오름들의 지형과 옛 음형을 더하면 이름의 형성 과정을 한층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물오름'은 '마르오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 본뜻은 익숙한 한자 풀이보다 기록과 현장의 대조 속에서 찾아야 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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