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석의 목요담론] 로컬의 재정의와 제주 정책의 새로운 지평
입력 : 2026. 11. 05(목) 02:00
문만석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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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로컬을 외치는 시대다.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브랜딩 등 지역을 내세운 사업과 정책이 범람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의 이름을 붙인 상품과 관광 콘텐츠는 늘었지만, 정작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와 삶의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로컬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지역을 하나의 공간이나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로컬은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작동하고, 관계가 밀도 있게 생성되며, 새로운 가치가 솟아나는 생태계이다. 로컬은 '사는 곳'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삶의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 제주 정책에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관광객 유치 중심에서 관계인구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관광객 숫자의 증가가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주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가이다. 제주를 반복해서 찾는 사람, 마을 활동과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사람 등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다. 이들이 지역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일자리와 공동체 활동, 사회적 경제를 연결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을 불러들이는 정책에서 사람과 관계를 만드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닫힌 공동체에서 열린 관계망으로 변화해야 한다. 제주의 마을공동체와 궨당 문화는 오랜 세월 지역을 지켜 온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강한 내부 결속이 때로는 외부 참여자를 배제하는 경계로 작동하기도 한다. 원주민과 이주민, 청년과 고령층, 정주민과 체류자가 서로의 경험과 역량을 나누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회와 리사무소도 기존 주민 중심의 조직을 넘어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빈집 활용, 생활 돌봄, 마을 자원 관리 등 주민의 일상과 맞닿은 문제부터 함께 해결하는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경쟁력은 열린 관계 위에서 굳건해진다.

셋째, 지역 개발과 외부투자가 '지역 내 가치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발생한 이익이 지역 내에 축적되고, 사회적 경제나 주민 주도형 사업으로 재투자되는 제도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로컬의 경쟁력은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지역 스스로 가치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자립적 구조에 달려 있다.

로컬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은 정책의 이름이나 사업의 유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책의 출발점을 바꾸는 일이다.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지역에 무엇을 더 가져다 놓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로컬의 경쟁력은 지역의 고유한 자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제주가 지향해야 할 미래도 여기에 있다. 지역을 개발하는 시대에서 지역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혁신하는 시대로, 이제 로컬 정책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문만석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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