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는 왜 작별할 수 없는가
입력 : 2026. 10. 21(수) 01:00
한상희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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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전국민주시민합창단원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

9월의 끝자락,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제10회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의 막이 올랐다. 각 지역의 역사가 담긴 깃발을 들고 들어서는 합창단원들의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째 날, 전국 13개 합창단의 내력과 노랫소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주 지형도였다. 인천 5·3합창단, 부산 박종철합창단, 광주 1987합창단, 전북 녹두꽃시민합창단이 이끄는 민주화 항쟁, 서울 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 울산 더울림합창단이 전하는 인간 존엄, 대구 평화합창단, 충북 두꺼비앙상블, 경남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이 부르는 생명과 치유, 대전 평화합창단, 서울 6·15시민합창단, 제주 4·3평화합창단이 담아낸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이어졌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제3자로 바라보기를 멈추고 나와 연결된 비극으로 직시할 때'진정한 연대가 시작된다. 합창단이 제주의 아픔을 함께 부른 순간, 4·3은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확장되었다.

둘째 날, 참가자 400명은 4·3평화공원 각명비 앞과 관덕정 광장에서 피날레 주제곡인 '작별하지 않는다'(한상희 작사·정현식 작곡)를 하나 된 목소리로 불렀다. 그 대합창은 상흔을 딛고 공동체를 보듬는 '회복적 정의'의 실천이었다.

주제곡 작사자로서 나는 4·3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3만 명 개개인의 존엄한 삶으로 바라보며 진상규명과 회복의 서사를 담고자 했다. 1절은 초토화 작전의 잿더미 속에서 "살아서 다시 꽃을 피우리라" 다짐한 희생의 역사다. 2절은 광풍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로 길을 열었던 공동체의 보살핌을 담았다. "상처마다 꽃 피고 눈물마다 별이 돋네"라는 고백처럼 고통은 회복의 여정이 되었다. 3절은 부모와 터전을 잃었던 아이들이 자라나 진상규명에 앞장서며 어린 날의 눈물을 연대의 품으로 확장한 증언의 과정이다. "꽃 진 자리마다 꽃으로 가득 피우리"는 비극의 자리를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겠다는 실천으로 완성된다.

축전의 제목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우리는 무엇과 작별하고, 무엇과 작별하지 말아야 하는가. 국가폭력의 기억, 배제와 절멸의 폭력성과는 단호히 작별해야 한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안아주고 연대하겠다는 이 섬의 약속과는 결코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다시는 꺾이지 않을 이 섬의 노래"라는 구절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는 누구나 존엄하다'는 명제와 이 존엄을 훼손하는 모든 것에 꺾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새긴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되 쉽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의, 그것이 우리가 4·3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는 방식이다.

각 단체의 합창과 대합창을 마주하며 경계를 넘어서는 울림을 경험했다. 우리의 기억은 고통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고 존엄의 가치를 지켜낼 것이다. 제주의 고통과 민주주의의 여정, 나아갈 길을 일깨워 준 전국의 민주 합창단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한상희 서귀포중 교장·‘작별하지 않는다’ 작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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