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제 결단의 시간이다
입력 : 2025. 03. 26(수) 02: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12·3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온 국민이 헌법재판소의 선고 일정만 기다리고 있다. 이전 대통령 탄핵 절차를 보더라도 늦어도 너무 늦다. 이 정도면 숙의가 아니라 지연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그 자체로 명백한 헌법 위반임은 명백하다. 변론이 끝이 나고 평의가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헌재 선고가 지연되면서 환율은 비상이고, 경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이미 실물 경기는 바닥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심하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들린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항고 포기로 윤석열이 사실상 '탈옥'한 상황인데도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재판 절차는 '결단 내리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크리노’(krino)에서 비롯한 '크리노스'(krinos)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말 그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재판 절차의 본질이다. 탄핵 심판에 대한 헌재의 결정 지연은 그 자체로 '위기'(crisis)를 초래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빌라도와 예수'에서 빌라도의 예수 재판을 예로 들면서 사실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의 대결을 말한다.

12·3 내란 사태 이후 헌재에 쏠린 국민의 시선은 헌재가 법리적 사실만을 다투는 결정이 아니라 진실의 세계에 대해 결단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적 요소로 가득한 불법 부당한 조치였다는 점은 차고 넘친다. 그날 밤 전 국민은 국회에 난입한 군인들을 똑똑히 목격했다. 헬기를 동원하고 국회 유리창을 깨고, 민의의 전당을 어지럽힌 사실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헌재 변론 과정에서 윤석열의 반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도 차고 넘친다. '계몽령'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것은 사형, 무기가 전부인 내란죄에 대한 형사재판을 염두에 둔 법리적 항변일 뿐이다. 내란의 우두머리에게 변론의 기회를 준 것은 촘촘한 법리의 그물을 해석의 이름을 빠져나가도록 허용한 것이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명징한 법적 절차를 통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한 자에게 민주주의적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부정을 포용하되 부정의 책임을 용서하지 않는다.

'반국가 세력'이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어내고, 허상을 향해 찌르던 윤석열의 창 끝을 돈키호테의 망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상상은 치밀했고, 그들의 모의는 치열했다. 그 모든 것을 막아낸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국회의 발 빠른 비상계엄 해제 의결도 물론이거니와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가고,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 세운 시민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윤석열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을지 모른다.

법리적 다툼이 사실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법의 언어로 진실의 문을 여는 '결단'이어야 한다면, 헌재는 이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실의 세계가 진실의 세계를 이길 수는 없다. 법리적 해석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오피니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