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던 사람이 비틀거리더니 옆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졌다. 걸어가던 사람은 잠시 멈추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CCTV에 담겨진 이같은 충격적인 모습은 조금도 걸러지지 않은채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지구촌을 뒤덮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스크 구매를 위해 줄을 선 중국현지의 모습이 남의 일 같았는데 지금은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이 됐다.

코로나19, 전염병. 죽을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고 물품 부족 사태가 현실이 되니 선악이 확 드러난다. "이때다" 하며 자기 지갑을 채우려 타인의 등을 치는 이기적 본성을 드러내는 부류가 있는 반면 "나보다 당신 먼저"라며 배려를 아끼지 않는 착한 사람이 한둘 아니다. 자가격리중 거리를 활보하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몰상식한 인간과 동선을 최소화하며 꼼꼼히 기록하고 타인과는 되도록 접촉하지 않았다는 어느 확진자의 일기가 오버랩된다. 마스크를 매점매석한 유통업자와 사기범의 행각에 열이 확 올랐다가 헝겊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주변에 돌렸다는 생활보호대상 어르신 이야기에 받았던 열이 내려간다. 정부나 지자체의 간곡한 부탁을 매몰차게 차버리는 집단과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자원봉사자들이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쉰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데는 저금통을 깨 코로나19 극복에 보태달라며 기부한 초등학생 등 선행을 이어가는 이름없는 천사들이 우리 곳곳에 있기 때문일 게다.

평소 우리끼리는 아웅다웅 죽자살자 하지만 뭔가의 계기로 한번 뭉치면 끝장내는 우리나라 민초들의 국민성은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20여년전 IMF도 국민들의 자발적 금 모으기로 헤쳐나갔다. 태안기름오염 사태 당시 세계는 회복에 수십년이 걸린다고 했지만 우리국민은 불과 몇년만에 생태계를 복원시켰다. 중국의 '사드 보복', 생채기는 입었지만 극복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NO ABE'는 현재진행형이다.

밥 먹듯 굶던 50~60년대, 제주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면 인사말을 이렇게 건넸다. "밥 먹어수광~". 밥을 먹는게 하루의 목표였고 밥이 있는 그 하루가 꿈이었다. 요즘은 이렇게 인사한다. "마스크 사셔수광~". 코로나19가 가져온 씁쓸함이다. 하루의 목표가 마스크를 사는 것이고, 목표를 이루는 성공적인 하루를 위해 이 약국 저 약국, 고행의 약국 순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스트레스가 매일 반복되지만 줄을 서도 어르신에게 양보하고 마스크를 나누는 '情'은 더 돈독해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적이 끊기고 생필품 사재기가 횡행하는 현지 분위기를 전한 이탈리아 한 노인이 인터뷰가 온몸을 전율케 한다. "2차대전 때도 이렇지 않았다"고. 세상사람들이 코로나19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절규다. 모든 대화의 주제가 코로나19 세상이다. 사스와 메르스, 공포가 뒤따랐지만 극복됐다. 공포심,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올가미는 아닐는지. 배려와 양보라는 선행이 코로나19라는 고약한 전염병을 이겨내는 힘이 되곤 있지만 실상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심을 경계하는 일일 게다. <김성훈 편집부장>